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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지혜씨도 돌아가셨다니까 말에 아닌거 현정의 5살이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10월 10일,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렸다. 전날 능라도 5.1경기장에선 경축대회도 있었다. 이 자리에 중국의 리창 총리와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참석해 김정은과 단상에 나란히 서는 장면이 연출됐다.
또 하나의 눈에 띄는 장면은 두 차례의 행사 모두 베트남의 또럼 총비서를 김정은의 바로 옆자리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이를 단순히 의전상의 배치로 볼 수도 있지만, 전통적인 북·중·러 구도에 베트남을 끌어들여 외교의 다변화·균형화를 시도하는 북한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러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초본 미묘한 메시지를 발신하면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와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베트남 역시 균형외교를 통해 전략적 공간을 넓히고자 하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 북한과 베트남 관계는 서로를 활용하는 새로운 '전략적 연계선'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중국이 구상하는 더 큰 그림, '미국 없는 아시아' 혹은 '미국의 영향력이 요양기관 축소된 아시아'라는 구도 안에서 용인되고, 푸틴이 작년 북한 방문 직후 곧바로 베트남을 찾았다는 점과도 맞닿아있다.
평양에서 선보인 중국–러시아–베트남–북한의 연결선은 단순히 신냉전의 북·중·러 연대가 아닌 새로운 무극의 진영화 속에서 다중심적(polycentric) 네트워크의 등장을 보여주는 '숨은 그림'이었다.
불과 키움 2주 전, 베이징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중국의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전쟁 승리 80주년, 이른바 전승절 행사에서 북·중·러 정상이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섰다. 항일 전통이라는 역사적 서사를 정치적 정당성과 전략적 결속의 장으로 재현한 것이다. 냉전 이후 처음으로 북·중·러 세 정상이 공식 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단순한 자동차매매계약 이벤트가 아니라 국제정치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상징적 선언이었다. 과거의 전승을 오늘의 반미 전략축 형성과 결합한 '전략적 연출'이자 내부 결속을 다지는 의식이기도 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당 총비서의 참석 아래 당 창 저축은행 적금 건 80주년 경축대회가 지난 9일 저녁 5월1일 경기장에서 성대히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중국 서열 2위인 리창 국무원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또 럼 베트남공산당 서기장 등이 행사에 참석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9월 베이징의 망루와 10월 평양의 행사장 사이에는 분명한 전략적 흐름이 존재한다. 북·중·러는 단순한 전술적 협력체가 아니라 역사·정치·전략이 결합된 일종의 공동 전선을 국제무대에서 연출하고 있다. 물론 이를 하나의 제도화된 블록으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중국과 러시아는 완전한 결합이나 일시적 제휴가 아닌, 필요와 이익에 따른 전략적 연대에 가깝다. 북한은 그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적극 활용해 자신만의 공간을 넓히고 있다. 새로운 진영화의 시대 속에서 북미 대화나 남북관계는 북한에 더 이상 전략적 우선순위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정세 변화와 동시에 워싱턴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동에서 이란 핵시설을 폭격하며 '충격과 공포'의 대외정책을 복귀시켰고, 유럽 동맹국에는 방위비 분담을, 아시아 동맹국에는 역할 확대와 무기 구매를 압박하고 있다.
겉으로는 '강한 미국'의 부활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혼란 그 자체다. 행정부 요직은 충성파 위주로 재편되며 정책 일관성이 무너지고, 백악관 NSC·국무부·국방부의 정책 결정 라인은 정상적 절차 대신 소수 정치 그룹과 친트럼프 미디어 네트워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의회와 주정부, 언론, 시민사회와의 갈등은 전면화되고 있다. 미국 외교는 점점 더 국내 정치의 무대 설정에 종속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 무산 직후 "중국 시진핑과 APEC에서 회담할 이유가 없다"며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그는 "오늘은 3000년 만에 중동에 평화가 찾아온 날(PEACE IN THE MIDDLE EAST)"이라고 강조하며, 노벨상 무대 상실의 정치적 상흔을 APEC을 대중 강경전의 무대로 전환함으로써 만회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원래는 미·중 정상회담의 협상 무대가 될 수 있었던 경주 APEC 회담을 '정치적 화풀이의 무대'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이는 단순한 무역 정책이 아니라 트럼프 특유의 '무대 전환(political stage shift)' 전략으로 읽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미국의 일관성 없는 압박과 동맹 경시 풍조는 역설적으로 북·중·러가 서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결속을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워싱턴의 흔들림이 평양과 베이징의 자신감 넘치는 연출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특정 행정부의 특수성이 아니라 미국 정치·사회 구조의 균열이 표면화된 결과다. 이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 이익 우선주의'와 정치적 분열은 구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그런 미국의 본질적 힘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사력, 기술력, 기축통화 패권이라는 구조적 힘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워싱턴의 리더십이 흔들릴지언정 미국의 힘은 쉽게 저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예측 불가능한 리더십과 압도적인 힘의 결합은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역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외교안보 라인은 여전히 과거의 언어에 머물러 있다. 북·중·러의 전략적 연대와 축의 이동이 가시화되고 있음에도, 이를 북러 무기 거래나 북중 교역 회복 등 '단편적 현상'으로만 축소해 파악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의 전략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북미 대화 재개'와 '비핵화'라는 낡은 주문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국제 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전략적 자율성의 부재를 드러내는 모습이다. 현실적으로 북한은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돌아올 가능성이 없고, 미국은 내부 혼란과 전략 우선순위의 이동으로 한반도 문제를 전면에 둘 여력이 없다. 그런데도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여전히 END(Exchange, Normalization, Denuclearization) Initiative라는 진부한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은 안일함이자 무능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핵화 협상의 복원이 아니라, 핵관리·군비통제·위기관리 중심의 전략 전환이다. 북·중·러 전략 축에 대한 실사구시적 분석과 복수의 대응 시나리오 마련하고 한미동맹에 대한 맹목적 신뢰에서 벗어나 전략적 자율성의 확보가 필요한 때이다.
세계는 이미 2010년대의 외교 시간표를 벗어나고 있다. 평양의 광장과 베이징의 망루, 그리고 흔들리는 워싱턴이라는 세 개의 장면은 그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를 읽지 못하고 과거의 주문을 반복하는 외교는 단지 흐름에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전략의 주도권을 포기하는 행위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외교·안보 전략의 근본적인 성찰과 용기 있는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